불교

[스크랩] 사마타 & 위빠사나

생각소리 2016. 3. 3.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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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마타 & 위빠사나 §

 

* 사마타 → 위빠사나 *

 

초기 경전에서 수행은 사마타samatha 수행, 즉 선정수행과

위빠사나vipassana 수행, 즉 지혜수행 두 가지를 말합니다.

 

넓은 범위에서는 보시와 지계도 수행이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선정수행과 지혜수행만을 수행이라고 합니다.

 

보시와 지계, 그리고 선정수행은

깊이 있는 지혜 수행을 하기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혜수행이야말로 불교 수행의 핵심입니다.

 

 

 

《선정(禪定), 사마타samatha》

 

    선정수행은 한마디로 말하면 삼매를 닦는 수행입니다. 삼매란 마음이 하나의 대상에 몰입된 상태를 말합니다.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계속 집중하다 보면 일체 다른 형상이나 소리 등이 인지되지 않고 오직 하나의 대상에만 몰입하게 되는데, 그 상태를 선정 또는 삼매라고 합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어떤 나쁜 짓을 하기 위해 그 대상에 집중하거나 쾌락에 빠진 것은 삼매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삼매에는 반드시 알아차림이 함께해야 합니다. 선한 마음에는 반드시 알아차림이 있습니다. 선한 마음이 하나의 대상에 집중된 상태를 삼매하고 합니다.

 

    삼매에 든 마음은 맑은 호수처럼 고요하고 깨끗합니다. “청정도론”에서는 이런 의미에서 선정수행을 심청정心淸淨, 즉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이라고 합니다. 선정수행을 해서 삼매를 얻으면 마음이 고요하고 깨끗해지므로 세상의 진리가 있는 그대로 비칩니다. 삼매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왜곡됨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최상의 바탕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청정도론”에는 선정의 주제가 여러 가지 있지만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들숨날숨이라는 하나의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여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입니다. 이를 ‘들숨날숨에 대한 알아차림(anpanasati)’이라고 합니다. 들숨날숨에 대한 알아차림은 석가모니 부처님뿐만이 아니라 모든 부처님들께서 성불하실 때 수행했던 방법입니다. 따라서 이를 ‘붓다의 호흡명상’이라고도 합니다.

 

 

〈니밋따 nimitta〉

 

    좌선할 때마다 숨에 한 시간 이상 집중할 수 있을 정도로 집중력이 강해지면 들숨날숨의 표상이 빛으로 나타납니다. 이 빛이 숨을 알아차리던 바로 그 지점에 나타나서 호흡과 일치하게 되면 그것을 니밋따 nimitta라고 합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숨이 아니라 니밋따에 집중해야 합니다. 집중의 대상을 숨에서 니밋따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이 정도되면 선정수행에 큰 진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계속 니밋따에 집중하다 보면 니밋따는 점점 더 밝아지고 반투명해져서 마치 새벽별처럼 밝게 빛나게 됩니다. 니밋따가 이런 상태가 되면 삼매 직전인 근접삼매에 이른 것입니다. 여기서 더욱 더 지혜롭게 수행을 계속하면 결국 니밋따에 완전히 몰입된 상태인 본삼매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최초로 얻은 선정을 색계 초선정이라고 합니다. 색계 초선정에 이르면 선정의 다섯 가지 구성 요소가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즉, 니밋따에 마음을 기울이게 하는 ‘일으킨 생각’, 니밋따에 마음을 유지시키는 ‘지속적 고찰’, 니밋따를 좋아하는 ‘희열’, 니밋따에서 행복을 느끼는 ‘행복’, 니밋따에 마음을 집중시키는 ‘집중’입니다. 이 요소들이 강력하게 계발되었으므로 마음은 니밋따에 완전히 몰입되어 오랜 시간을 지낼 수 있습니다.

 

 

◎ 3가지 니밋따

 

*회색(준비표상) → 하얀색(익힌표상) → 반투명(닮은표상)

 

    표상에는 준비표상(parikamma nimitta), 익힌표상(uggaha nimitta), 닮은표상(patibhaga nimitta)의 세 가지가 있습니다.

 

    준비 표상은 준비 단계의 수행을 할 때 사용되는 집중의 대상을 말합니다. 들숨날숨에 대한 알아차림에서는 자연스러운 숨, 접촉 지점, 연기 같은 회색 등을 말합니다.

 

    익힌 표상은 준비 삼매가 점점 강해지면 나타나는 표상으로 일반적으로 목화솜처럼 하얗게 나타납니다.

 

    닮은 표상은 집중이 점점 더 강해지면 나타나는 표상입니다. 일반적으로 새벽별처럼 밝고 반투명하게 나타나며, 닮은 표상을 통해야만 삼매에 들 수 있습니다.

 

 

〈선정 수행을 통해 얻는 이익〉

 

1. 대상·법을 왜곡됨 없이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곧 위빠사나(지혜) 수행을 하기 위한 아주 단단한 토대를 만들어줍니다.

 

2. 삶 속에서의 가장 큰 행복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해탈은 하지 못하더라도 세속의 그 어떤 행복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입니다.

 

3. 삼계 중 욕계를 벗어나 색계나 무색계에 태어날 원인을 제공합니다.

    각자 자기가 얻은 깊이의 선정에 해당하는 세상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선정을 얻지 못한 사람은 절대 욕계를 벗어나 색계나 무색계에 태어날 수 없습니다.

    선정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죽을 때 선정에 들어 죽어야만

    색계나 무색계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 색계·무색계에 아무리 좋은 복락이 있고 즐거운 과보가 많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무상無相한 것입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것입니다.

    그곳에 태어나게 한 업이 다하면 또 다시 서른한 가지 세상 중 어느 곳에 태어나

    고통과 즐거움을 겪으면서 끊임없이 윤회해야 합니다.

    결국 삼계三界는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지혜수행을 통해야만 완전한 행복인 열반을 얻을 수 있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습니다.

 

 

〈무상유정천(無想有情天)〉

 

*색계 사선천에 있는 천상계

 

    색계 사선정을 얻은 후에 ‘인식이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라고

    인식을 혐오하는 수행을 하면 무상유정천에 태어나게 됩니다.

 

    무상유정천에 태어난 존재는 마음은 없고 몸만 있습니다. 이 몸은 그냥 돌 같은 물질(무정)과 달리 생명기능이 있는 물질(유정)로 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마음이 없이 물질로만 덩그러니 태어나는 곳이기 때문에 재생연결식 자체가 없습니다. 그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그냥 몸만 있다가 몸의 수명이 다하면 그것으로 끝납니다. 마음이 없으니 죽음직전 인식과정이 없고 그것의 대상인 업이나 업의 표상, 태어날 곳의 표상 같은 것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생명체의 몸이 유지될 수 있게 해주는 물질의 생명 기능이 재생연결식의 역할을 대신합니다.

    무상유정천에서 살다가 죽으면 바로 욕계에 태어납니다. 마음 없이 물질로만 존재했으므로 그 생에서는 업을 지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무상유정천에 태어나기 전에 지은 적당한 업이 작용해 욕계에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무상유정천은 색계 세상이기는 하지만 성자나 보살처럼 의식이 맑은 사람은 가지 않는 세상입니다. 알아차림이나 삼매, 지혜를 계발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아무런 발전도 없이 단지 물질로만 존재하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성문사과(聖聞四果)

 

성자는 수다원과 ,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과를 얻은 사람을 말하는데

이들은 범부와는 다른 윤회 과정을 거칩니다.

 

적어도 일곱생 안에는 반드시 아라한이 됩니다.

 

수다원 이상의 성자가 되면 악처네 곳과 무상유정천

이 다섯 가지 세상에는 태어나지 않습니다.

 

자기가 속해 있는 세상 그 위로 태어나지 이하로는 절대로 태어나지 않습니다.

무색계 선정이 색계 선정보다

휠씬 고요하고 좋기 때문에

자기가 얻은 무색계 선정보다 더 높은 선정을 닦으려 하지

그보다 낮은 선정을 닦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도의 지혜를 얻어 성자가 되면

원할 때 원하는 시간만큼

열반을 대상으로 출세간의 삼매에 들어 행복을 느릴 수 있습니다.

 

 

〈멸진정(滅盡定)〉

 

색계나 무색계 선정은 마음이 오직 하나의 대상에 몰입되어 있는 상태인 반면

멸진정은 마음 자체가 최대 일주일까지 일시적으로 소멸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멸진정은 다른 특별한 선정입니다.

 

멸진정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색계와 무색계 모든 선정을 모두 얻어야 하고,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 아나함이나 아라한이 되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만 멸진정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멸진정을 상수멸정想受滅定이라고도 합니다.

 

 

 

《위빠사나의 지혜 : 모든 현상의 삼특상三特相》

 

    지혜가 계발되면 먼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의 개별적인 특성을 통찰할 수 있습니다. ‘땅의 요소는 다른 물질들의 토대를 제공한다’, ‘불의 요소는 다른 물질들을 성숙시킨다’, ‘탐욕은 대상에 집착하는 특성이 있다’ 등등 각각의 현상들이 가진 고유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신과 물질을 분석하는 지혜’라고 합니다.

 

   각 현상들이 가진 고유의 특성을 이해하게 되면 한 걸음 더 나아가 각 현상 사이의 연관 관계도 통찰할 수 있습니다. 이는 연기와 조건에 대한 통찰을 하는 것으로, ‘조건을 파악하는 지혜’라고 합니다. 현상들의 개별적인 특성과 연관 관계를 이해하고 나면 모든 현상이 가진 공통된 특성을 파악하는 더욱 더 깊은 통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을 면밀히 관찰해 보면 그 모든 현상이 가진 공통된 특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현상은 항상 변하고 있다. 즉 모든 현상은 무상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현상은 무상하기 때문에, 즉 일어났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괴로움입니다. 그래서 일체의 모든 현상은 고입니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들에는 고정 불변하는 실체인 자아가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현상은 무아입니다.

    이처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이 가진 공통된 특성은 무상·고·무아 삼특상三特相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모든 현상의 삼특상을 통찰하는 지혜를 위빠사나 지혜[vipassana-nana]라고 하며 이를 통해서만 열반에 이를 수 있습니다.

 

    위빠사나 지혜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본질이 무상·고·무아임을 이해하면 세상이 안전하지 않음을 통찰하게 되어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됩니다. 이때 수행자의 마음은 안전하고 완전한 행복인 열반으로 향하게 되며 결국 깨달음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 어떤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 그 알아차림을 통해

    현상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진다는 것을 보게 되고

    무상·고·무아에 대한 통찰이 이어집니다.

    이처럼 깊이 통찰하는 위빠사나의 지혜가 일어나는 것은 가장 뛰어난 욕계 선업입니다.

 

 

 

《알아차림의 방법 3가지》

 

마음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바로 위빠사나 수행, 즉 지혜수행의 출발점이 됩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에는 호흡, 몸에서 일어나는 통증, 몸의 감각, 더움, 시원함, 무거움, 가벼움, 불쾌한 느낌, 상쾌한 느낌 등을 알아차립니다. 밥을 먹을 때에는 음식의 맛, 냄새, 촉감 등을 알아차리고, 직장에 갈 때는 걸어가는 것, 서 있는 것, 앉아 있는 것이나 뒤돌아보는 것, 구부리는 것, 앞으로 가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립니다. 사람을 볼 때는 좋아하는 마음, 싫어하는 마음 등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마음이 대상과 만나는 접촉,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의도, 진리에 대하여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몸·느낌·마음·현상, 이 네 가지 대상을 어떻게 알아차리는지에 대하여는 “대념처경大念處經”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1. 처음에는 한 가지를 주된 대상으로 해서 알아차림을 하십시오.

    예를 들어 들숨날숨을 주된 대상으로 알아차리다가 다른 대상이 나타나면 자연스럽게 그 대상을 알아차립니다. 이후 다른 대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다시 들숨날숨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하나의 주된 대상을 가지고 알아차림을 하다 보면 수행이 나아감에 따라 다른 대상들도

알아차릴 수 있게 됩니다.

 

2. 알아차림의 힘을 점차로 확대해 가십시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아차리려고 하지 말고 알아차릴 수 있는 만큼만 알아차리면 됩니다. 자신의 역량을 넘어서서 알아차리려고 지나치게 노력하면 수행이 즐겁지 않고 괴로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알아차릴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알아차리다 보면 점차 알아차림의 힘이 강해져서 나중에는 아주 미세한 현상도 알아차릴 수 있게 됩니다.

 

    일상적인 삶 속에서 알아차림을 놓치지 않으면서 수행 주제를 챙기는 시간을 자꾸 늘려나가는 것이 행복한 삶과 행복한 죽음의 열쇠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분별하지 말고 단지 알아차리기만 하십시오.

    어떤 대상이 나타나더라도 단지 알아차림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알아차림으로써 얻어진 정보는 왜곡되지 않은 진실한 정보입니다. 진실한 정보가 쌓이기 시작하면 지혜가 계발되고 이로 인해 열반을 실현할 수 있게 됩니다.

 

 

 

《어리석음(癡, 無明)이 악의 근본입니다》

 

    어리석음은 모든 불선한 마음의 근본 뿌리이므로 모든 불선한 마음과 반드시 함께 합니다. 그래서 불선한 마음은 원인이 한 가지는 반드시 있습니다.

    여기에 탐욕이 일어나거나 성냄이 일어나면 원인이 한 가지 더 보태져서 두 가지가 됩니다. 탐심과 진심은 서로 반대되는 성격이라 동시에 일어날 수는 없습니다. 탐심은 대상을 좋아하는 것이고 진심은 싫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선한 마음의 원인은 한 가지 또는 두 가지입니다.

 

    선한 마음이 일어날 때는 알아차림이 있고 알아차림이 있으면 탐욕 없음과 성냄 없음이 항상 함께 합니다.

 

※슬픔은 어떤 상황을 싫어하는 마음이므로 성냄에 해당합니다.

 

 

*** 발췌 정리한 도서 : 윤회와 행복한 죽음(일묵스님) ***

출처 : 상민이의 불교 자료실, 법보시
글쓴이 : 상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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