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아아~! 잊으랴~! 내 어찌 이 날을~! 6,25

생각소리 2015. 8. 14. 15:58

야야! 어여~ 마이 묵으래~이"

"됐심미~더 어머님 , 이제 더 못 먹겠심~더"

"오늘 힘 쓸라카먼 든든하게 마~이 묵어야제, 요것만 더 묵~으라"

나는 정말 오늘 난생 처음 이런 호강을 해본다.

어제 칠성시장 뒷골목 가서 벼슬이 시뻘건 산 장닭을 잡아왔다.

어릴때 옆집 닭하고 싸워서 이기라고 고추장에 시뻘겋게 밥을 비벼먹여 키운 윤기가 반들반들 나던 놈이랑 똑같다.

닭다리는 커녕 눈오던  겨울에 문틈사이로 울 오빠가 새틀을 놓아 잡은 참새 다리도

 여자가 참새 먹으면 종지깬다고 구경도 안시켜줬는데..... 

 

남자도 아닌, 딸도 아닌 며느리가 시어머니 앞에서  완전 잘생긴 장닭의 다리를 뜯다니~~~ !!

"암만 마~이 묵어도 소용 없을낀데예, 관장 다 시켜 버린다 카던데요~."

"그래도 오후 까지는 니 뱃속에 있을낀데 근기는 있을끼다."

나는 이렇게 호강을 하고 오전에 병원을 갔다.

"촉진제 놨으니 오후에 배가 살살 아파오면 다시 병원 오시면 됩니다. "

아무리 뱃속에 있을때가 편하다지만 이 놈은 너무 효자노릇을 한다.

일주일이 지났건만 엄마 편하라고 나올 생각을 않으니....

 

일주일이 넘으면 뱃속에서 늙는다나 뭐라나 겁이나서 유도 분만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

첫딸도 그러더니 둘째도 엄마랑 식구들이 기다리는건 생각도 않고 태평이다.

집에서 출산물을 준비하고 인근의 개인 병원으로 갔다.

첫애는 종합병원에 다니다가 나았지만 둘째는 애 낳는거 별거 아니다싶어 동네병원에서 낳기로 했다.

가게하느라 바쁘기도 하고, 딴 사람들이 천정에 형광등 불이 안보이도록 아파야 애가 나온다고 겁을 줬지만

 나는 엉덩이도 작은데 첫애를 펑숭펑숭 잘 나았기 때문에 자신이 붙은 까닭이다.

 

진통이 오기 시작하자 음악을 틀어놓고 누웠다.

처음엔 기분좋은  음악감상이었으나 나중엔 남은 아파 죽겠는데 노래라니~~~욕이 막 나왔다

 남편은 퇴근하는 길이라하고 밖엔 시어머니와 세살딸이 또 한생명을 기다리고 있다.....

불안하다.~~ 또 딸을 낳으면 어쩌나??

첫째때 의사쌤께 물었더니 "기회는 또 안 있겠습니까?"  ~  딸이구나 했는데 딸이었다.

이번엔 아들임이 짐작가지만 불안하다.

 

언니둘 , 4촌 ,5촌고모, 집안의딸들이 시집가서 줄줄이 다 딸을 놓았다.

친정 아버지는 이눔의 지지바들이 남의 집구석 망친다고 한소릴 한다.

우리 엄니도 딸을 다섯이나 낳았다. 큰 오빠가 아들이지만 할배한테 평생 고운 시선 한번 못받고 사는걸 봤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어릴때 기억이 고스란히  아직 상처로 남는다.

외할머니는 어리디 어린 우릴보고 "지~지바들이 많아서 어마이 고생 시킨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어린 마음에도 우린 이유도 없이 그냥 죄인이었다.

알아서 남자애처럼 자랐다. 나무도 하고 밭일도 잘했다.그것이 딸을 낳아 죄인으로 사는 엄마를 위하는 일이었다.

울 엄마는 엄마이기 전에 동지였다. 20년간 동장을 지낸 아부지는 포마드 기름을 바르고 읍내출타가 하루일과였다.

이렇게 자랐으니 나에겐 아들 낳는게 절대절명의 사명일수밖에 없었다.

 

진통의 간격이 좁혀져 온다. 아~! 이 찢어질듯한 배변감!!(남자들은 이 느낌 모르지만 여자분들은 이해가 되실듯)

"힘 주세요! 자 ~숨 들이쉬고 한번만 더 힘주세요! 옳지 옳지~ 잘해요~"

"아들입니다. 축하해요~!"

"엉~엉~~~  앙~앙~~~ 응애~응애~~"

산모와 신생아가 같이 울어 순식간에 분만실이 울음바다가 됐다.

의사선생님 왈 ~ "참~ 아들 놓고 이렇게 우는 산모는 첨봤네"

딸을 놓고 울지않은건 아니었다. 그땐 너무 죄스러워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몰래 울었다.

아~! 이젠 이렇게 큰소리로 당당하게 울수도 있다.

밤새 잠이 안왔다. 너무 좋아서~~~ 딸을 낳았을땐 2시간이나 기절해 있다가 추워서 깼는데.....

이놈을 들여다 보는것만으로도 너무 기쁘다. 어깨가 빵빵하고 목덜미에 솜털이 보송보송하다.

뱃속에서 뭘 그리 많이 먹었는지 검은 태변을 수도 없이 싼다. 그래도 예쁘다.

세살베기 딸은 그렇게도 동생이 생긴다고 쇠뇌를 시켰건만, 첫 대면에 왠 못생긴 눈감은 애를 보고 혼비백산 울음을 터트렸었다.

그렇게 21년전 6월 25일 밤은 깊어갔고~~~~~~~~

 

 

사는게 바빠 생일 잘 못 챙겨줄까 싶어 기억하기 좋은 날 잡아  딸은 스승의 날로, 아들은 6,25로 날을 잡았건만....

딸생일땐 항상 학교 선생님 선물, 학원 선생님 선물 챙기느라 지 생일은 항상 뒷전이었고,

작년 군대간 아들에게 "군대서 니 생일 챙겨 주드나?" 했더니

 "엄마! 6,25사변일 축하하는 군대가 어디있어요?" 했다.( 그 이튿날 케잌을 받았다고 했다.)

오늘은 야전 훈련을 나간다고 했는데 미역국은 못 먹어도 도시락을 먹었겠지요.

글쎄요~, 아들이 얼마나 좋은지 그때 그시절 어른들은 왜 그렇게 아들을 외쳤을까요??

세월이 흐른 지금 세대는 딸이 훨씬 효녀노릇하는 세상인데.....

저는 죄인으로 살다가 아들 놓고 가석방 됐습니다. 물론 저의 마음의 형틀에서 말이죠........

오늘 불현듯 세월의 뒤안길을 돌아보며 쓴 웃음 한번 지어 봅니다...

 

 

훈련소 앞에서 들어가기 싫은지,여기저기 전화만 하더니~~~

이번 봄 휴가중. 진짜 의젓 해 졌습니다...

출처 : 히말라야의 꿈 (The Dream of Himalaya)
글쓴이 : 반야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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